우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직면한 세계와 동시에 세상의 또 다른 어두운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후에 자신이 쓴 장편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라는 소년을 내세워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한 내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데미안'이라는 친구가 싱클레어 옆에서 도움을 주고 자극을 주면서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할 때, 많은 수고가 따르고 노력이 파생되지만 그 선택은 새로운 세계를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반드시 책임을 수반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강조하는 중요한 부분은 선택과 연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2:15). 아직 사람이 범죄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수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하기 이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수고가 뒤따라야만 했습니다.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지식과 생각과 판단과 능력을 총동원해서 온몸으로 살아가야만 가능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동산에서 살고 있던 아담에게 맨 먼저 주신 선물은 모든 만물을 포함한 그 동산 자체였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키고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인 동산과 동산에서 나는 각종 나무의 열매들, 동산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 이 모든 것들이 아담에게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하나의 복을 더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법'입니다. 하나님은 동산에서 살아가는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6-17).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었습니다. 먹으라는 말과 먹지 말라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정해서 법을 정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최초로 주어진 율법인 것입니다. 그 나무를 만져보면 호기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 열매의 색깔과 모습을 보면서 더 열매를 먹고 싶은 호기심과 탐심이 생겨날 나무였을 것 같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자유도 만져볼 수 있는 자유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도 있었으나 먹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에 대해서는 먹지 말 것을 명하시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먹을 수 있다고 규례를 정하시는 순간 아담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법이 제정되고 그 법 아래서 살아가는 한 자유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재가 규명됩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유라는 말은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단어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말은 내가 스스로 선택을 하고 스스로 결정을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상태입니다. 비로소 동산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선택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에는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감당해야 될 책임이 따라옵니다.
에덴동산에 살 때 그들에게 이 법을 주시면서 동산 안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이 세운 규칙과 질서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을 주었습니다. 자유인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모든 영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려야만 했습니다. 동산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허락한 것이 금한 것보다 훨씬 많고,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이 하나님이 금한 것보다 훨씬 많아서 그것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한 것에 시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인간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고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갈 영광이 주어지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을 주셔서, 그 법을 지키도록 하셨다는 중차대한 메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늘 고민하며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영적인 일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가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육체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선택하며 살아가는 모든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될 때 그 선택은 죄로 나타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영원한 멸망에 빠진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이라고 합니다.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성자께서 함께 하셨는데(요1:2-3), 재창조 사역에도 성자께서 참여하고 계십니다.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사망의 형벌을 당하고 영원히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죽음의 자리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영원토록 살게 하시려는 내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어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것인지 하나님을 등질 것인지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선택은 내가 합니다. 그러나 책임도 내가 져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적으로 살아가는 백성이 되는 바른 선택을 합시다. 온몸으로 살며 자유를 남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택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