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의 배꼽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지구의 배꼽이 어디일까 하다가 그 지구의 배꼽을 예루살렘이라고 하고 거기서부터 다른 대륙들을 그려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어로 옴팔로스는 배꼽이라는 뜻이며, 영어에서는 중심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옴팔로스 신드롬'(omphalos syndrome)이라는 전문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과거 잉카제국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토 안에 지구의 배꼽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나 멕시코 고원에서 문명을 발전시킨 아즈텍인들이 호수 위에 있는 섬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하였는데 이 곳을 자신들의 신이 지명해준 곳이라고 생각하여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사상은 옛날 중국이 가졌던 중화사상이나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닮았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런 생각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을 '옴팔로스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이념이나 특정한 사상이나 특정한 가치관을 가지고 펼치는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대한 표현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옴팔로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일 날과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로 지키는 성수주일이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옴팔로스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 모든 날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성수주일을 지키는 신앙이 중심이 되고 모든 날이 그렇게 여겨질 때 온전한 신앙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줍니다. 2:1절에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한 구절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보이는 사물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시고 법칙과 원리를 통해서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함축적인 단어로 방대한 지식을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천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천지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과 법칙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단어 뒤에 굳이 '만물'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만물'이라는 단어 '체바암'이라는 말은 '차바'라는 말의 복수형입니다. '차바'라는 말은 '군대'를 일컫기도 하고, '군중'을 설명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무리들'을 지칭할 때 쓰기도 했습니다(수 5:14-15). 또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를 표현할 때도 사용했습니다(사 34:4; 렘 33:22; 단 8:10). 이렇게 '천지'와 '만물'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운행하시고 주도하시는 가운데 일하는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 하늘의 해와 달과 별과 같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들까지도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에 사람이 우러러 보거나 신으로 섬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일곱째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2).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에 대한 성격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일과의 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구별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엿새 동안 하나님이 일하신 그 날과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그 날의 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이 날을 어떻게 지켜야 되고, 어떤 자세로 안식일을 구별해야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 안에서 구별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모든 자기 백성에게 이 날을 구별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2:3), 이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날을 거룩하고 구별되게 지내는 모든 자들이 그 복 가운데 들어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계획이 담겨져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을 복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 안식일은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킴으로 얻는 영적인 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안식, 또 우리 안에 이루어질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몸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며 우리가 주일을 성수하는 행위입니다. 내 안에 이루어질 진정한 안식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고백하는 것이 주일성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5:15절에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광야로 나온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법을 주셨을 때, 전제조건을 말씀하신 후 안식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 전제조건이 무엇입니까?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너희를 건져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온전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영혼의 참된 안식과 자유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과 구원의 은혜로 주어진 특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매 칠일 마다 이 안식을 맛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기쁨의 날이어야 하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즐거운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고,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가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이 입술로 하는 나의 신앙고백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날로, 거룩한 삶으로 구별된 삶을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을 때 육체와 영혼이 함께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주일을 성수할 때 영혼과 육체가 참된 안식을 사모하는 결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일 성수'(主日聖守)라고 하고 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든,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든, 주일에 예배하는 행위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임을 스스로 공표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늘가족에 속할 자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드러내는 행위가 주일 성수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서 주일 성수는 아주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구속 받은 자유인에게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서 주일 성수를 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모든 날의 옴팔로스(중심)로 삼는 신앙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주일이 내 모든 삶의 중심이 되면 모든 날이 주일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