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지금도 세상과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지만, 성경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과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들리는 수많은 소리와 내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든 아름다운 모든 장면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시편 1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 19:1-4)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루의 모든 것들이 또 다른 날에게 계속해서 연설을 쏟아내듯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원문은 '말하고, 전하니'라는 표현을 미완료 형태로 기록합니다. 미완료는 아직 행동이 끝나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문법적 형태입니다. 날이 다음 날에게 계속적으로 지식을 전파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훌륭한 스승이 제자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전수하듯, 도제(徒弟)의 방식으로 가르쳐주는 것과 똑같은 방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모든 일을 만방에 선포하는 형태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이 자연의 계시가 낮 동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나타납니다.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 19:3)라고 합니다. 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언어적인 표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으신 자연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일하고 계시는 증거가 세상에 가득 차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를 보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심령이 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패역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인간이 죄로 인하여 자연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을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라고 합니다. 기록된 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닫혔던 입이 열리고, 죽었던 심령이 살아나면 자연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솜씨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서 드러난 계시를 '일반 계시' (general revelation) 혹은 자연 계시라고 합니다. 특별계시를 통해서 거듭난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가 보이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살펴본 말씀을 보면, 하늘의 궁창에 두 광명체(光明體)를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1:14).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체와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체가 있다고 말합니다(1:16). 왜 하늘에 해를 만들고 달을 만드셨다고 하지 않으시고, 하늘에 두 광명체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의도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애굽과 근동지방의 세계관이 해와 달을 숭배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숭배의 대상이고,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거주하는 동안 애굽 사람들도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문화와 세계관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아 광야로 나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모세가 선포한 첫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낮에 보는 태양도, 밤에 보는 달과 별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신격화하는 세계관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태양이라는 말도, 달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두 광명체를 두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늘에 두 광명체를 만들고,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4). 이 구절에서 징조라는 단어에 주목해봅시다. 낮과 밤과 계절과 시간과 연수를 정하는 모든 것들이 징조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새날을 맞게 되는 것이 징조요,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 징조이며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는 모든 것이 징조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순간에 창조주 하나님이 그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만드신 세상을 아주 정확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시는 증거가 징조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이 징조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날마다 확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낮에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고, 밤에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침을 찾아오는 것도 징조요 밤이 오는 것도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합니다.
시편 121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여기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 사람은 신앙의 순례자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입니다. 순례자의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도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입니다. '에제르'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을 때, 돕는 배필이 에제르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군사적 용어로 사용될 때입니다. 아군의 필요를 채워주고 전쟁에서 잘 싸우도록 도와주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적인 전투에 나설 때 나를 도와주시는 에제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땅을 지으시고 하늘을 지으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에제르라고 했을 때 아내는 남편을 도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도 만드시고 밤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낮에도 하나님이시고, 밤에도 하나님이십니다. 낮에도 우리를 지키시고, 밤에도 지켜주십니다. 시편 121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지킨다'(히.샤마르)는 단어입니다(시 121:3-4).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과 밤의 변화를 보고, 날마다 내 앞에서 일어나는 징조를 보면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향하여 긍휼을 베푸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주 앞에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