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 사람의 겉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형체도 없으시고 모양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할 때 이 하나님의 형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서 숨을 쉬고 움직이며 활동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후에 살아서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만나는 순간 비로소 사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형상을 온 몸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한 것입니다. 이 형상은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그 영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 속에 부여하셨습니다. 고유한 특징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만드셨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형상(첼렘)'이라는 단어나 '모양(데무트)'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형상이라는 것은 마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 그림자의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바 되었다는 것은 그 형상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원형은 바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치 하나님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양(데무트)'이라는 단어는 '다마'라는 동사에서 나왔으며 '다마'는 '닮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존재로 지은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무는 무엇일까요?
사람에게 주시는 사명과 책임은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다스리라', '정복하라'는 것입니다(1:28). 모든 만물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데, 그것을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지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만물을 자기 수하에 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이 교만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됩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해야 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 가운데 있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는 백성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창조주의 영광을 온 몸으로 받아서 그 영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예배자로 회복되어서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이요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실 때 삼위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이루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면 천지창조의 사역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사역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때 성령은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자의 모습은 창세기 1장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령만 보입니다. 그러면 성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장 2절에서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결국 성경은 천지창조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기록합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삼위 안에서는 완전한 조화와 일치와 통일이 있어서 조금의 틈도 균열도 없습니다.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진정한 영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삼위일체의 관계적 영성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관계적 영성'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 안에서 훼파되고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가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올바른 관계적 영성을 통하여 회복해가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은 온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에서 중요한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복을 주다'(히. 바라크)는 의미 속에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손을 들다', '축복하다', '칭송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의미가 또 있습니다. '무릎을 꿇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들을 종합해보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그 입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며 칭송하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류에게 주신 복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의 근본적인 모습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진 것인지 기억하고, 존귀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힘씁시다. 사람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은 그 육체와 영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람으로 살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의 자리에서 살고,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사람이 온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삶을 통하여 내 안에 엉클어지고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