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에게 남다른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새들을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비전문가인 존 스토트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찍은 새들의 종류만도 2,5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드디어 스토트 목사님은 1999년에 한 권의 특별한 책을 출간하면서 그 책의 타이틀을 "The Birds, Our Teachers"라고 정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언젠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DMZ에 들어가서 새들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을 때, 경희대 교수였던 우리나라의 새 전문가 윤무부 교수님께서 동행했습니다. 그때 윤교수님이 존 스토트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새들에 관하여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그때 스토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의 교훈의 메시지가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는 것이었습니다(마 6:26). 세상에서 염려와 근심 가운데 처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공중의 새를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둘째 날에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 땅과 바다를 나누시면서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날에 만드셨던 궁창에 다섯째 날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게 하시고, 물에는 물고기들이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가 까닭 없이, 목적 없이 지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궁창은 새들이 날아다닐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만드신 것은 각종 물고기들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1:20). 물에는 생물들이 살고, 하늘의 궁창에는 새들이 날으라고 하셨습니다. 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나 궁창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고기와 새들이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까닭 없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은 뜻이 있어서 하신 것입니다. 궁창도 하늘에 날아다니는 생명체인 새들을 위해서, 바다도 수많은 생명체들을 위해서, 땅도 모든 식물과 열매 맺는 각종 나무들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1:21). 하나님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종류대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진화론은 종에서 다른 종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이미 종은 종을 넘어갈 수 없도록 금하시고 명하고 계십니다. 종류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창조하신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만드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다양성'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삶은 우리가 믿음의 지체들과 공동체를 이룰 때도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명령하십니다(1:22). 이 명령은 하나님이 계속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복을 주시는 것으로 마무리 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이제 생육해야 하고, 번성해야 하고, 세상에 살아가면서 충만해져야 하는데,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이후에 그 복이 구체화 되도록 하나님이 계속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나님이 섭리하신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땅에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땅은 나무를 위해서 존재하고 식물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그 식물은 다시 땅에 사는 생명체를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존재의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무질서한 상태에서 아름답게 지어져가듯이 혼돈스러운 상태 속에 있던 우리에게 빛이 비치고 그 빛은 우리 안에 생명을 부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라가고 성숙해집니다.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벧후 1:4-7). 그래서 우리는 자라갑니다.
이것이 바로 질서 있게 자라가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모습으로 '카오스'(Chaos)의 세계에서 '코스모스'(Kosmos)의 세계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틀을 만들어 놓으신 후에, 틀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듯이 모든 것들을 만드십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돈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라가야 될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엡 4:15). 그리고 성숙해져야 하는 백성들입니다(딤전 4:15).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심령 가운데 새 생명의 씨앗을 심기시고 거듭난 자로 세우실 때,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들은 서로 다른 종으로 살아가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 조화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고, 하나님이 그렇게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창조 질서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 '공중 나는 새를 보라' 각기 다르게 살아가지만,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존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