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와 완전한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영역은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발전된 현대과학으로도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비밀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 눈앞에 만들어진 존재 자체를 놓고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저 하늘의 별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지도 못하고 그 존재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구촌에 살고 있으면서 이 땅의 일들도 다 알지 못하지만 새로운 하나를 발견하면 금방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신 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다시 땅과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이 땅과 바다를 나누실 때 어떤 형태로 나누고 가시는지를 오늘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땅과 바다를 나눈 이 사건을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떠나서는 땅이 어디서 나왔고 물은 어디서 나왔으며, 또 하늘은 어떻게 생겨나고 바다는 또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존재를 규명할 수 없습니다. 물과 땅과 땅에 기는 짐승들을 생각해 봅시다. 물론 짐승도 사람도 흙으로 빚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결과에 의하면, 물과 흙과 생물들의 최소한의 원소를 분해했을 때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기본적인 원소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띠게 됩니다. 과학이라는 법칙 하나가 발견되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법칙을 만드신 분도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과학적 원리와 법칙들이 적용되어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셨습니다. 물 가운데서 땅이 솟아나게 하시고, 낮아질 것은 낮아지게 하시고, 높아질 것은 높아지게 하셔서 그 물을 강과 하수로 흘려보내시고 일부는 땅 속에 저장하시고, 육지를 뭍이라 하시고 물이 있는 곳을 바다라 칭하셨습니다.
천지 창조 기사를 통해 노아 홍수 사건 이전에도 하나님이 물을 쌓아두고 계시고, 땅에도 물을 쌓아두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이것들로 사람을 '심판하는 도구'로도 쓰실 수 있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자비의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지와 땅을 나누고 바다와 땅을 나누셨을 때, 바닷물이 육지에서부터 흘러 들어가 한 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많던 물이 다시 육지로 흘러들어오게 된다면 육지는 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의 한계(限界)'를 정하고 계십니다(렘 5:22, 벧후 3:5-7).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정하신 분임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만드시고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신 후에 이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물론 해일(海溢)이나 지진(地震)이 일어나는 특별한 상황은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는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물이 침범해서 땅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땅을 보호하고 또 땅에서 자라는 식물과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물의 한계를 정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1:11-12).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창조가 진행될 때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이루시면서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 하시니 그대로 됩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요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약속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따라가며 수긍하지 않기 때문에 약속하신 복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풀과 채소와 각종 실과를 맺는 나무들을 만드실 때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선언에서 진화론이 끼어들 여지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진화를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이 이미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신앙을 바로 회복하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수선하고 엉클어진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서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셨을 때는 반드시 그 이름과 함께 한계를 설정해 놓으십니다. 피조물이 그 한계를 넘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게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정해진 한계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가며 정해주신 삶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닷물이 땅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서로 공존하게 하십니다. 땅은 풀과 채소와 각종 열매 맺는 나무를 내고 땅에서 나온 이것들은 땅에서 살아갈 생물과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존재에는 목적이 있고 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존재하는 이유도, 식물이 존재하는 이유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존재의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결국 사람을 만드신 이유도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나의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